독립운동기 ‘가갸날’의 탄생 – 빼앗긴 나라에서 지킨 글자 사랑
독립운동기 ‘가갸날’의 탄생 – 빼앗긴 나라에서 지킨 글자 사랑
1. 나라 잃은 시대와 조선어의 위기
1920년대 조선은 일제강점기 한가운데 있었다. 일본은 한일병합 이후 조선어를 점차 억압하며, 학교 교육과 관공서에서 일본어 사용을 강제했다. 특히 1910년대 후반 조선어 교육 과목 축소와 일본어 교과 강화는 조선어의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이 시기 조선의 지식인들은 ‘정치적 독립은 당장 어렵더라도, 말과 글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언어를 잃으면 민족 정체성이 무너진다는 절박한 생각은, 결국 조선어 연구와 보급 운동으로 이어졌다.
2. 조선어연구회의 탄생과 활동
이런 위기 속에서 1921년, 한글 연구와 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어연구회가 결성됐다. 이 단체는 주시경의 제자들인 이윤재, 최현배, 김윤경 등이 주축이었다. 이들은 한글 맞춤법 통일, 표준어 제정, 사전 편찬 등 기초 연구부터 시작해, 대중 계몽 활동까지 펼쳤다.
조선어연구회는 단순한 학술 단체가 아니라,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언어 독립운동 단체’였다. 그들은 한글의 역사와 가치를 대중에게 널리 알릴 방법을 고민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가갸날’이었다.
3. ‘가갸날’이라는 이름의 유래
오늘날의 ‘한글날’이 처음 제정될 당시의 명칭은 ‘가갸날’이었다. 이는 당시 한글 학습에서 자음과 모음을 가르칠 때, ‘가, 갸, 거, 겨…’와 같이 발음 순서대로 읽히던 전통적인 표기법에서 유래했다.
‘한글날’이라는 표현은 1930년대에 들어서야 공식화됐고, 그 이전에는 국민에게 더 친숙한 ‘가갸’ 발음이 기념일 이름이었던 것이다.
4. 1926년, 첫 가갸날의 개최
1926년 11월 4일,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념해 첫 가갸날 행사를 개최했다. 당시에는 훈민정음 반포일이 음력 9월 29일로 계산되어, 양력 11월 4일이 기념일로 지정됐다.
행사는 경성 중앙청 강당에서 열렸으며, 약 100여 명의 학자, 교육자, 학생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는 훈민정음 창제의 의의와 한글의 우수성이 강조됐고, 참가자들은 ‘우리 글을 살려 민족혼을 지키자’는 결의를 다졌다.
5. 가갸날의 시대적 의미 – 언어를 통한 독립운동
가갸날은 단순히 문자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었다.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맞서 조선어와 한글의 생명력을 지키는 상징적인 민족운동이었다.
이 시기에 조선어연구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준비했고, ‘조선어 사전 편찬’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가갸날은 이러한 학술·문화 운동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매개 역할을 했다.
일제는 이 행사를 주시했고, 때로는 검열과 감시를 강화했지만, ‘언어 기념일’이라는 형식 덕분에 가갸날은 비교적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다.
6. 명칭 변화와 한글날로의 발전
1931년, 가갸날은 양력 10월 29일로 날짜가 변경됐다. 이는 훈민정음 반포일 계산에 대한 학계 조정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1934년에는 ‘가갸날’이라는 이름이 ‘한글날’로 공식 변경됐다.
‘한글’이라는 명칭은 주시경이 만든 용어로, ‘하나뿐인 글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명칭 변경은 한글의 정체성을 더 분명히 하고, 조선어연구회의 활동 목표와도 잘 부합했다.
7. 광복 이후 한글날의 변천
1945년 해방 후, 한글날은 대한민국 정부와 사회가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민족 문화 행사로 자리 잡았다. 날짜도 여러 차례 조정되었고, 1945년 이후에는 10월 9일이 확정됐다. 이는 세종 28년(1446년) 음력 9월 상한(上澣)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다.
한글날은 1991년 공휴일에서 제외됐다가, 2013년 다시 법정공휴일로 부활했다. 하지만 그 뿌리는 바로 1926년의 가갸날에 있다.
8. 가갸날이 남긴 유산
가갸날은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언어를 지키려는 지식인들의 집념을 보여준다. 정치적 독립이 불가능했던 시절, 언어와 문자를 매개로 한 ‘문화 독립운동’은 민족혼을 보존하는 최전선이었다.
가갸날은 한글의 가치와 역사를 대중에게 각인시켰고, 광복 이후 한글날로 이어지며 오늘날까지 한글의 소중함을 기념하는 전통을 남겼다.
9. 결론
1926년의 가갸날은 빼앗긴 나라에서 한글을 지키기 위한 민족의 약속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민족의 정신과 존엄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오늘날 한글날을 맞이해 우리는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뿐만 아니라, 나라 잃은 시대에도 우리 글을 지키려 헌신한 조선어연구회와 수많은 무명의 이들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