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세자의 본명 ‘이선’과 ‘사도’ 시호의 의미 – 이름에 숨겨진 비극과 정치
사도 세자의 본명 ‘이선’과 ‘사도’ 시호의 의미 – 이름에 숨겨진 비극과 정치
1. 사도 세자의 본명, ‘이선(李愃)’
사도 세자의 본명은 이선(李愃)이다.
‘愃(선)’자는 ‘온화하다’, ‘너그럽다’는 의미를 지니며, 왕세자의 품성과 도량을 상징하는 글자였다. 영조는 아들에게 이 이름을 지어주며, 장차 조선을 다스릴 관용과 덕성을 갖춘 군주가 되기를 바랐다.
조선 왕실의 이름 짓기는 단순한 작명 행위가 아니라, 음양오행과 글자의 획수, 의미를 철저히 고려하는 국가 의례에 가까웠다. 이선이라는 이름 역시 왕세자의 품격을 드러내기 위해 신중하게 선택된 것이었다.
2. 왕세자에서 ‘사도 세자’로
이선은 1735년 2월 13일, 영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왕세자가 된 이후에는 본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세자’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하지만 1762년 7월, 영조의 명으로 비극적으로 생을 마친 뒤, 그는 더 이상 왕세자가 아니라 시호(諡號)로 불리게 된다.
조선 왕실에서는 왕과 왕세자가 죽으면, 생전의 덕과 과실을 평가해 시호를 올렸다. 시호는 후대에서 그 인물의 공식적인 역사적 이름이 되었는데, 이선에게 주어진 시호가 바로 사도(思悼)였다.
3. ‘사도(思悼)’의 뜻
‘사도’는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 思(사) : ‘그리워하다’, ‘생각하다’라는 뜻.
- 悼(도) : ‘슬퍼하다’, ‘애도하다’라는 뜻.
즉, ‘사도’는 ‘그를 그리워하고 슬퍼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겉으로 보면 부드럽고 애틋한 표현이지만, 조선의 시호 체계 속에서는 미묘한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왕세자였던 이선에게 ‘사도’라는 시호를 준 것은, 왕으로서 추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도,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 결정이었다.
4. 시호 선정의 정치적 맥락
영조가 ‘사도’라는 시호를 선택한 데에는 여러 해석이 있다.
첫째, 왕으로 추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시호에 ‘왕(王)’ 자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 인물이 군주 반열에 오르지 못했음을 뜻한다.
둘째, 명분 유지다. 영조는 세자의 죽음이 단순한 부자간 불화가 아니라, 국가의 안위를 위해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버지로서의 심정까지 차갑게 보일 수는 없었기에, ‘그리워하고 슬퍼한다’는 온건한 표현을 썼다.
셋째, 정치적 균형이다. 노론 세력은 사도 세자의 처형을 지지했고, 소론과 남인은 반대했다. 시호 ‘사도’는 두 세력 모두가 완전히 반박하기 어려운 절충안이었다.
5. ‘사도’ 시호의 이례성
조선 왕실 시호 가운데 ‘사도’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일반적으로 ‘사(思)’나 ‘도(悼)’는 단독으로 쓰이거나, 다른 글자와 결합하여 의미를 강화하는 방식이 많았다. 하지만 ‘사도’라는 두 글자를 직접 조합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후대 학자들은 ‘사도’가 단순한 애도의 표현을 넘어, 영조의 복잡한 심리와 정치적 고심이 담긴 결과물이라고 평가한다.
6. 정조의 재해석 – 장헌세자
사도 세자의 아들 정조는 즉위 후 부친의 복권을 추진하며, ‘사도’라는 시호 대신 장헌(莊獻)이라는 새로운 시호를 올렸다.
- 莊(장) : ‘엄숙하다’, ‘위엄이 있다’
- 獻(헌) : ‘바치다’, ‘공덕을 세우다’
정조가 부친에게 장헌이라는 시호를 부여한 것은, 단순히 슬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덕과 업적을 인정받는 인물로 재평가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후대 사료 속에서 그는 여전히 ‘사도 세자’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불리고 있다. 이는 비극적 상징성이 시호보다 더 강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7. 이름과 시호가 전하는 메시지
이선이라는 이름은 영조가 아들에게 기대한 덕성과 관용을 담았고, 사도라는 시호는 아버지이자 군주로서의 복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역사 속 이름과 시호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시대 정치와 감정, 권력의 흐름을 압축한 기록물이다. 사도 세자의 경우, 본명과 시호 모두가 조선 후기 정치사의 비극을 상징한다.
8. 결론 – 이름 뒤에 숨겨진 역사의 아이러니
사도 세자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왕세자의 죽음이 아니라, 왕권·정치·가족 관계가 얽힌 복잡한 비극이다.
그의 본명 ‘이선’은 이상과 덕목을, 시호 ‘사도’는 애도와 절충의 정치술을 담았다. 그리고 이 두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조선 후기의 어두운 그림자를 상징적으로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