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학문과 교육 – 잊혀진 동방의 지성
한국사에서 고구려는 ‘강성한 군사력’으로 가장 많이 기억된다.
하지만 고구려의 진짜 힘은 단지 무력만이 아니라, 뛰어난 ‘학문’과 ‘교육 시스템’에서 비롯된 내면의 역량에 있었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구려는 이미 4~5세기경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발달한 교육 체계를 갖췄고, 인재 양성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했던 선진국이었다.
▶ 태학(太學)의 설립 – 고구려 국가 교육의 상징
고구려 교육의 상징은 바로 ‘태학’이다. 372년(소수림왕 2년), 고구려는 평양에 ‘태학’을 설립한다. 이는 동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국가가 주도적으로 세운 공식 교육기관의 효시 중 하나다. 중국의 국자감보다도 빠르고,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등장한 국가 교육기관이었다.
태학은 주로 귀족 자제들을 대상으로 한 고등 교육기관으로, 유교 경전, 문학, 역사, 법률, 행정 실무 등을 체계적으로 가르쳤다.
이곳에서 교육받은 자들은 중앙 관료, 지방관리, 장군 등 국가 핵심 인재로 성장했다.
《삼국사기》 권20 고구려본기: “소수림왕 2년(372), 처음으로 태학을 세워 학문을 익히게 하였다.”
태학의 설립은 국가가 ‘학문’을 중시하고 체계적으로 인재를 양성했다는 점에서 동시대 주변국과 차별성을 보여준다.
▶ 지방의 경당(扃堂) – 평민 교육의 시작
고구려의 교육제도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경당’이다.
경당은 지방 촌락마다 설치된 일종의 ‘지역 인재 양성소’이자, ‘청소년 수양 기관’이었다. 주로 평민 또는 호족 자제들을 대상으로, 한문과 기본 문식, 도덕, 무예(활쏘기, 말타기 등)까지 폭넓게 교육했다.
경당은 오늘날의 공립 중·고등학교와도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
학생들은 글을 배우는 동시에 심신을 단련하고, 공동체에 필요한 규범과 예절을 익혔다. 이는 고구려 사회가 단순히 전사적 성향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문·무를 균형 있게 중시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삼국사기》: “고구려에는 경당이 있어 청소년들이 모여 글을 읽고 활쏘기를 익혔다.”
경당 출신 인재 중에는 후일 태학에 진학하거나 지방 통치, 군사 지휘관으로 성장한 이들도 많았다.
▶ 교육의 내용 – 유학, 법률, 역사 그리고 실용 지식
고구려의 교육은 무엇보다 실용성에 중점을 두었다.
태학에서는 유교 경전(논어, 효경, 시경 등) 뿐 아니라, 행정 실무, 기록, 외교 문서 작성법 등 관료로서 필요한 모든 소양을 체계적으로 가르쳤다.
경당에서도 한문 문해력, 도덕·예절,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무예까지 고루 익히게 했다.
이러한 교육은 중국의 일방적인 모방이 아니라, 고구려만의 실용적이고 독창적인 교육 철학에 기반을 뒀다.
‘문(文)과 무(武)를 겸비한 인재’를 중시했던 고구려의 사회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과 계층 유동성
고구려는 원칙적으로 귀족·호족 중심의 신분제를 가졌지만,
경당이나 태학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인 자는 출신에 상관없이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이러한 인재 등용 시스템은 국가 전체의 역동성을 키웠고, 위기 시에는 다양한 계층에서 뛰어난 지도자가 등장하는 기반이 됐다.
실제로 태학과 경당 출신의 인재들은 국내성, 평양성 등의 중앙 관료뿐 아니라 변방의 지휘관, 외교사절, 행정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 고구려 교육제도의 동아시아적 영향
고구려의 태학과 경당 제도는 훗날 백제, 신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백제는 ‘오경박사’(五經博士) 제도를 두었고, 신라도 ‘국학’을 설립하며 관학을 발전시켰다.
특히 고구려 출신 학자와 기술자, 유민들은 남하·이주 과정에서 후삼국 및 발해, 일본에까지 교육문화를 전파했다.
일본의 ‘아스카 시대’에는 고구려 유민들이 ‘태학’을 설립하는 데 관여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또한 고구려식 교육법과 실용 지식, 무예 전통 등은 발해로 이어져 북방 문화권에 독특한 학문 문화를 남기게 된다.
▶ 교육과 국가 경쟁력의 연결
고구려는 교육과 학문을 통해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소수림왕, 장수왕 시기 대외 팽창의 근본 원동력이 되었고,
고구려가 오랜 기간 강대국으로 남을 수 있었던 내적 에너지였다.
‘학문’과 ‘교육’은 전쟁과 정복의 뒤편에서, 조용히 고구려를 뒷받침한 진짜 힘이었다.
오늘날에도 고구려 교육제도는,
“강한 나라를 만들려면 먼저 사람을 기르고, 그 바탕은 학문과 교육에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
마무리 – 고구려, 동방의 지성국을 다시 생각하다
우리는 흔히 고구려를 무력과 팽창의 나라로 기억하지만,
실은 ‘학문과 교육의 나라’라는 또 다른 얼굴이 존재했다.
고구려식 교육, 인재 양성의 전통은 오늘날에도 ‘인재가 국가의 미래’ 임을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적 유산이다.
고구려 태학과 경당, 그리고 그 교육 철학을 재조명하는 일은
과거를 넘어 현재와 미래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 속에서, 동방의 지성국 고구려가 남긴 ‘사람을 키우는 힘’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