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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도 ‘택배’가 있었다?

고려시대에도 ‘택배’가 있었다?

 

고려시대에도 ‘택배’가 있었다?

파발과 공문서 유통 시스템의 역사

요즘은 택배가 하루 만에 도착하고, 공문서는 클릭 한 번이면 전달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수백 년 전, 인터넷도 전기도 없던 고려시대에는 국가 간의 문서나 물품은 어떻게 전달되었을까요? 놀랍게도 고려에도 지금의 택배와 행정 시스템을 떠올리게 하는 ‘파발’과 공문서 유통 체계가 존재했습니다.


고려의 광역 네트워크, 역참(驛站)의 등장

고려시대의 국가 행정은 중앙정부와 지방 간의 빠른 소통을 필요로 했습니다. 특히 거란, 송, 여진 등 이웃 국가들과의 외교 문서를 주고받거나, 전국 각지에서 보고를 받아야 했기에 문서와 사람을 빠르게 전달하는 조직적인 운송 체계가 필요했습니다.

그 핵심 인프라가 바로 ‘역참(驛站)’, 즉 말을 갈아타고 쉬는 공공 숙소 겸 물류 거점이었습니다.
고려는 전국적으로 역참을 설치해 역로망을 만들었고, 주요 도로에는 일정 간격마다 역을 배치하여 전령과 사신이 하루에 수십 리를 달릴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파발(擺撥)’이라는 고려판 특송 서비스

‘파발’이란 긴급한 명령이나 중요한 소식을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설치된 전용 통신 수단 및 조직입니다.
고려 말이나 조선에 와서 용어로 굳어진 감이 있지만, 실제로는 고려시대에도 파발의 기능은 존재했습니다. 특히 국경 지역에서의 군사 동향, 외교문서 전달, 반란 진압 명령 등 긴급 사안에는 말 잘 타고 달리기 빠른 전령이 배치되어 지방에서 중앙까지 혹은 중앙에서 변방까지 ‘비상 전달’을 수행했습니다.

고려 후기에 이르면 마패를 소지한 전령이 말을 타고 여러 역을 거쳐 달려가는 모습이 문헌에 자주 나타나며, 최고속 배송체계라 불릴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고려의 공문서 전달 방식은 어땠을까?

고려는 중앙과 지방 간의 행정 문서를 엄격한 규율에 따라 작성, 전달, 보관했습니다. 대표적인 문서로는 조서(詔書), 교지(敎旨), 공문(公文), 장계(狀啓) 등이 있었으며, 이러한 문서는 대부분 문서 담당 관리(사관)가 작성하고, 역참망을 따라 해당 관청이나 지방관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문서를 실은 전령은 통행증 역할을 하는 ‘문부(文符)’를 소지하고 있었고, 이는 오늘날의 공문서 운송 허가증과 같은 기능을 했습니다. 또한 역참에서는 필수적으로 이들을 숙식시키고, 말과 사람을 교체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공문서 유통체계가 특정 지역에서만 작동한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매우 체계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12세기 고려는 왕권과 관료체계 중심으로 전국을 연결하는 정보망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죠.


외교 문서 유통과 국제 ‘택배’

고려는 송나라, 거란, 여진, 일본 등과 수시로 외교 문서를 주고받았으며, 이때도 역시 전담 사신이나 전령이 국경 역참이나 항구를 통해 문서를 전달했습니다. 특히 고려는 상대 국가에 따라 문서의 형식과 어휘를 달리 사용하는 고급 외교 기술을 구사했으며, 이를 비밀스럽고 안전하게 전달하는 운송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송나라에 보내는 국서(國書)는 송나라식 문체에 맞게 작성했고, 이 문서를 들고 가는 사신은 사전 교육과 예절 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문서의 유출이나 훼손을 막기 위해 전용 봉함 방법이나 특수 인장을 사용한 기록도 존재합니다.


고려 파발과 조선 파발의 차이점

많은 사람들이 파발제도를 조선의 제도로만 알고 있지만, 고려가 그 전신이라는 점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파발은 일반 파발(걸어서 전달)과 기발(기마 파발)로 나뉘었고, 전국 단위로 정비되어 있었지만, 그 기초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형성된 것이었습니다.

특히 몽골과의 전쟁 이후, 고려는 정보 전달의 중요성을 더욱 인식했고, 일부 지역에는 ‘별파발’이라고 불리는 긴급 연락조직이 존재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결론: 고려에도 ‘물류 혁명’은 존재했다

오늘날의 택배와 행정문서 유통 시스템은 결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이미 고려시대에도 국가적 차원의 역참망과 파발 조직, 체계적인 공문서 전달 규칙이 존재했고, 이는 이후 조선의 행정 시스템으로 이어졌습니다.

파발은 단순한 물류 기능을 넘어, 국가의 명령이 국민에게 닿는 통로였고, 고려의 치밀한 행정력과 교통 시스템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놀랍기만 합니다.
이제 택배가 도착할 때, 잠시라도 고려의 전령과 말이 달리던 모습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 요약

  • 고려시대에는 전국적인 역참망과 전령 조직(파발)을 통해 문서와 물품을 전달했다.
  • 공문서는 문부(문서 통행증)와 함께, 정해진 규율에 따라 전달되었다.
  • 파발은 단순한 통신 수단을 넘어, 국가의 명령 체계를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