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고조선의 8조법 – 역사의 첫 법전

 

고조선의 8조법 – 역사의 첫 법전

한반도의 첫 번째 국가, 고조선. 많은 이들이 단군 신화와 함께 고조선을 기억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나라가 가진 놀라운 법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8 조법(八條法)’이다. 오늘은 한민족 최초의 성문법이자 동아시아 고대 법제의 기초가 된 고조선의 8 조법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려고 한다.

고조선의 8조법 – 역사의 첫 법전

■ 8조법, 어떻게 전해졌나?

8 조법이 오늘날까지 전해진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과 같은 중국의 사서에 “고조선에는 8가지의 법이 있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8개 조항이 모두 남아 있는 것은 아니고, 현재까지 온전하게 전해지는 조항은 3가지뿐이다. 나머지 5개 조항은 구체적 내용이 실전(失傳)되어 사라졌다.
그렇다면, 8 조법의 주요 내용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지닐까?

 

■ 8조법의 전해지는 조항 – 놀라운 인간중심주의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따르면, 다음의 3개 조항이 남아 전해진다.

  1.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2.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배상하게 한다.
  3. 도둑질한 자는 그 정도에 따라 노비로 삼거나, 일정한 수의 곡식으로 배상하게 한다.

이 간결한 3개의 법 조항만으로도 고조선의 법체계가 추구했던 방향성과 사회 질서를 가늠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생명과 재산의 보호, 그리고 피해 구제와 처벌의 균형이 명확히 드러난다.

 

■ 사형, 배상, 노비 – 그 안의 원칙

고조선 8조법의 핵심은 ‘엄격한 생명 존중’에 있다. 사람을 죽이면 그 죗값으로 반드시 생명을 내놓아야 했다. 이는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다는, 고대사회의 강력한 윤리의식과도 연결된다. 당시 사형이란 극형이 ‘살인’에만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에서도 참고할 만한 점이 많다.
두 번째로,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면 그 피해를 곡식(주로 현미 등 곡류)으로 배상하도록 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처벌이 아닌, 실질적 피해 회복에 초점을 둔 것이다. 실제 곡식은 당대 경제에서 화폐와도 같은 존재였으므로, 현실적인 피해 보상 역할을 했다.
도둑질을 한 경우에는 그 정도가 가벼우면 곡식으로 배상하고, 중하면 노비로 삼았다. 즉, 범죄의 경중을 따져서 신분을 강등하거나 물질적으로 보상하게 하는 방식이다. 노비가 된다는 것은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니, 경제적·사회적으로 매우 무거운 처벌이었다.

 

■ 고조선 법의 특징 – ‘인간 중심’과 ‘화해 지향성’

고조선의 8조법은 복수와 보복 중심의 원시법이 아닌, 인간 중심의 이성적·합리적 법체계를 보여준다. 단순히 처벌에만 집중하지 않고,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피해 회복, 사회적 화해를 중시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곡식 배상’ 조항은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무분별한 응징과 보복의 악순환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이는 단순한 범죄 억제에만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조화로운 유지와 재생산에 방점을 두었다는 의미다.

 

■ 남겨지지 않은 5개 조항 – 무엇이었을까?

아쉽게도 8조법 전체가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은 연구자들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러 학설이 있으나, 대체로 실전된 5개 조항에는 재산권 보호, 가족·혼인 질서, 농경사회 운영 등 일상적 삶과 직결되는 규정이 포함됐을 것이라 본다.
실제로 고조선 사회는 이미 농경, 목축, 도기 제작, 제철 등 비교적 고도화된 경제활동이 이루어진 복합사회였다. 따라서 법 역시 단순한 원시적 규범을 넘어선,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 고조선 8조법과 다른 고대법의 비교

고조선의 8조법은 다른 고대 문명권의 법전과도 자주 비교된다. 예를 들어 함무라비 법전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보복적 성격이 강했다면, 고조선 8조법은 처벌과 더불어 현실적 피해 회복과 신분 질서 유지에 힘을 쏟았다. 이는 동아시아 문화권만의 고유한 법적 감수성과 윤리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중국 주나라의 예법이나, 고대 일본의 율령과도 차별점이 뚜렷하다. 특히 곡식 배상은 농경사회 특유의 법적 조율 방식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전통은 후대 삼한, 삼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의 민법적 전통으로 이어졌다.

 

■ 8조법이 우리에게 남긴 것

고조선의 8조법은 단순한 고대법이 아니라, 한민족의 정체성과 윤리의식, 공동체적 가치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다. 이 법은 “사람을 해치지 말 것, 공동체의 질서를 지킬 것, 잘못은 그에 맞는 방식으로 보상할 것”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사회의 원칙을 2천 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전달해 준다.
동시에, 현대 사회의 법과 질서, 정의가 ‘사람’을 중심에 둘 때 더욱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음을 고조선 8조법은 시사해 준다.
최초의 법이면서도 인간 중심, 피해 회복, 사회적 조화와 재생산이라는 가치가 뿌리내려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인상적이다.

 

마치며 – 법은 시대의 정신이다

고조선 8조법의 정신은 곧 “사람답게 살아가는 공동체의 규범”이다. 잊힌 듯 보이지만, 오늘날에도 그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고조선 8 조법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어떤 마음으로 사회를 꾸려갔는지, 그리고 그 유산이 현대의 우리 삶에 어떻게 남아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