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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의 초기 명칭 ‘순국선열·전몰장병 추도일’ 제정 배경

 

 

현충일의 초기 명칭 ‘순국선열·전몰장병 추도일’ 제정 배경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충일’은 매년 6월 6일에 거행되는 국가적 추모일입니다. 그러나 제정 당시의 공식 명칭은 ‘현충일’이 아니었습니다. 1956년 처음 제정될 때의 정식 이름은 바로 ‘순국선열·전몰장병 추도일’이었습니다. 이 명칭 속에는 단순히 전몰 군인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서 순국한 선열까지 함께 기리고자 하는 정부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현충일의 초기 명칭 ‘순국선열·전몰장병 추도일’ 제정 배경

 

1. 1950년대 한국 사회와 국가 추모 의식의 필요성

1950년대 중반의 대한민국은 6·25 전쟁이 끝난 지 불과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전쟁의 상흔은 사회 전반에 깊게 남아 있었고,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한 그 이전 일제강점기 동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지만, 이들을 기리는 공식 국가행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정부와 국회는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기 위해, 전몰 장병과 순국선열을 한날에 함께 추모하는 국가 차원의 기념일을 만들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순국선열·전몰장병 추도일’이 탄생하게 됩니다.

2. 명칭에 담긴 의미

‘순국선열’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과정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을 뜻하며, ‘전몰장병’은 6·25 전쟁과 같은 전장에서 전사한 군인을 지칭합니다. 이 두 범주를 함께 묶은 이유는, 대한민국이 건국 후 겪은 가장 큰 두 가지 역사적 시련—일제강점과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인물들을 모두 포괄적으로 기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명칭은 오늘날의 ‘현충일’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추모 대상의 범위를 드러내고 있으며, 제정 당시에는 국민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3. 제정 과정과 법률적 근거

‘순국선열·전몰장병 추도일’은 1956년 4월 19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제정되었습니다. 이후 대통령령 제1145호 ‘순국선열·전몰장병 추도일에 관한 규정’이 공포되면서 공식적인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됩니다. 이 규정에는 추도일의 날짜를 매년 6월 6일로 정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여 추도식을 거행하도록 명시했습니다.

이와 함께 추도일에 전국적으로 조기 게양을 의무화했고, 공공기관뿐 아니라 학교, 군부대, 민간단체에서도 이에 동참하도록 권고했습니다.

4. 6월 6일로 날짜를 정한 이유

6월 6일은 전통적으로 ‘단오’ 전후의 시기이며, 조선시대 군사들이 무예를 점검하던 ‘망종(芒種)’ 절기와도 가까워 상징성이 있었습니다. 또한 농번기를 피해 많은 국민이 추모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시기라는 실용적 고려도 작용했습니다. 일부 기록에서는 6월 6일이 ‘육(6)·육(6) 군인의 날’과 연관이 있다는 해석도 전해집니다.

5. 첫 추도식과 사회적 반향

1956년 6월 6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첫 공식 추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대통령, 국무위원, 군 수뇌부, 유족 대표, 학생단체, 일반 시민 등 수천 명이 참석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전국이 하나로 모여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령을 기렸다’며 그 의미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이 첫 추도식은 한국 사회에 국가적 추모 문화가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매년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추모 행사가 열리게 됩니다.

6. 명칭 변경과 ‘현충일’의 등장

1965년, 정부는 ‘순국선열·전몰장병 추도일’이라는 긴 명칭을 보다 간결하게 바꾸기 위해 ‘현충일’이라는 새 이름을 채택했습니다. ‘현충(顯忠)’은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이들을 드러내어 기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칭은 바뀌었지만, 초기 제정 취지였던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을 함께 기린다’는 정신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7. 역사적 의의

‘순국선열·전몰장병 추도일’이라는 초기 명칭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전쟁과 식민지라는 두 개의 상처를 동시에 기억하고자 했던 의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독립운동가와 군 전몰자를 한데 묶어 기리는 점은, 과거와 현재의 희생을 동일선상에서 존중하는 역사관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현충일’이라는 이름에 익숙하지만, 그 뿌리를 알면 이 날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초기 명칭이 전하려 했던 통합적 추모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은, 단순한 형식적 행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게 해줍니다.

맺음말

역사는 이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냅니다. ‘순국선열·전몰장병 추도일’이라는 긴 명칭은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그 속에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자부심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다음 현충일에는 그 뿌리와 변천 과정을 기억하며, 단순한 휴일이 아닌 ‘기억의 날’로서 맞이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